중봉 조헌의 선견지명과 통합적 학문 태도
조헌은 조선의 정통도학자이면서 임진왜란 전에 전란을 예견했다. 조선 선비들은 조헌의 이러한 예지력은 그의 학문이 첫째, 천문학과 상수학에 근거한 것이며, 둘째, 성명의 리의 성현의 도와 ‘지성의 도’[至誠之道]를 행하는 지성(至誠)의 도덕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조헌의 예지력은 지극한 정성[至誠]으로 사물에 감응(感應)하여 이치를 알게 되어 조짐을 알게 된 선견지지(先見之智)라는 평가와 아울러, 조헌이 이지함과 서기 및 서경덕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천문학과 상수학을 이용한 예지력을 지녔다는 평가는 조선 학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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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in | Yulgok sasang yŏn'gu Vol. 48; pp. 125 - 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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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Authors | , |
Format | Journal Article |
Language | Korean |
Published |
(사)율곡연구원
30.06.2022
(사)율곡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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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 조헌은 조선의 정통도학자이면서 임진왜란 전에 전란을 예견했다. 조선 선비들은 조헌의 이러한 예지력은 그의 학문이 첫째, 천문학과 상수학에 근거한 것이며, 둘째, 성명의 리의 성현의 도와 ‘지성의 도’[至誠之道]를 행하는 지성(至誠)의 도덕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조헌의 예지력은 지극한 정성[至誠]으로 사물에 감응(感應)하여 이치를 알게 되어 조짐을 알게 된 선견지지(先見之智)라는 평가와 아울러, 조헌이 이지함과 서기 및 서경덕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천문학과 상수학을 이용한 예지력을 지녔다는 평가는 조선 학술사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에 조헌의 예언가로서의 면모를 한국 선가(仙家)들의 도맥과 연계하여 살펴볼 만하다. 조헌은 한국의 <해동전도록>과 <해동이적> 등 도가서에 기록된 도인(道人)들과 교류했다. 조헌은 1572년(29세)에 이지함과 함께 지리산에 은거하던 서기와 함께 기거하면서 강학했다. 그리고 『해동전도록』에 한국 도술학을 전수했다고 기록한 정렴ㆍ박지화 등과 평생 친교했다. 이러한 사실은 조헌과 한국 도술학의 연관성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이며, 조헌과 한국 선도(仙道)의 도맥과의 관계가 주목된다. 이상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조헌은 조선의 도학과 술학이라는 두 학문 전통을 통합적으로 아우른 인물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The greatness of Jo Hoen(1544-1592) is not prophetic power for the future, but practice the a great righteousness beyond the good and bad luck of him. Meanwhile, Jo Hoen set the date and place for the Japanese invasion before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and predicted the Japanese invasion if the envoy turns around and Jeong yeo rip's revolt. This foresight is not a matter to be overlooked. He was assessed that his foresight was based on the study of Sangsu(象數學, the study of interpreting adversity as mathematics), and was respected because he had the intellectual morals of the statement beyond that the study of Sangsu. First, Jo Hoen's foresight can be assessed to be based on astronomy and the study of Sangsu. Jo learned astronomy and the study of Sangsu by interacting with Seo Kyung Duk's disciples through Yi Ji-ham and Soe-gi. It has been assessed that Jo Hoen has mastered and utilized astronomy and the study of Sangsu as well. Second, Jo as a prophet is worth looking at in conjunction with Korean taoist academic genealogy. Jo had interacted with the taoists and learned the art of Taoism. No record of such facts shall be given. Jo studied in 1572 and lived with Soe-gi, Lee Ji-ham, who lived in Jiri Mountain. Soe-gi also predicted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Jo has been close to Jeong-ryem and Park Ji-hwa for a lifetime, who was the famous korean taoist. This fact cannot be overlooked in relation to the connection between Jo and the korean taoist Association. Attention is being pai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Jo and korean Taoism academic genealogy. In summing up this fact, Jo can be evaluated for bringing together two academic genealogy, the Neo-Confucianism and the Taoist studies of Joseon. Most notable, however, was that such learning and practice were both methods and processes of performing a 'way of extreme sincer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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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 Yul Gok Society |
ISSN: | 1738-8236 |
DOI: | 10.35436/yulgok.2022.48..125 |